우리가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말 중에 ‘문제’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너 무슨 문제 있냐?” 묻고,
아이들이 속상한 짓을 저지르면 “저 녀석 저거 ‘문제아’로구나.” 합니다.
또 자기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에도 “나한테 문제가 생겼어.”라고 말합니다.
‘문제’란 말 그대로 TROUBLE, 골치 아픈 어떤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하느님께 기도를 하거나, 무당에게 굿을 해 달라고 하거나,
점쟁이에게 찾아가서 점괘를 봐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길에 걸림돌 같은 ‘문제’란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질까 합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가 누구에게 생겼는가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담 받으러 오시는 많은 분들이 “애가 문제예요”, “남편이 문제입니다”라고 말하십니다.
그러나 심리치료에서는 문제를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누가 어떤 짓을 하고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 마음이 불편한가, 누구 마음이 불행한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컨대, 실직한 남편이 쥐꼬리만한 용돈으로도 잘 놀러다니고,
공부 못하는 자식이 친구들과 노느라 정신없는 것을 보고 속상한 마음이 든다면
문제가 생긴 것은 남편이나 자식이 아니라 속상한 사람 자신이란 것입니다.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담을 받아야 할 사람 역시
속상한 사람 자신인 것인데, 많은 분들이 자기 속상함은 뒷전에 두고
자기 눈에 문제로 보이는 사람 이야기만 합니다.
어떤 자매가 매일같이 기도를 하였습니다.
매일 당신을 부르는 기도소리에
주님께서 바쁜 와중에도 그 자매와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뭐가 문제인가?”
“남편이 술을 끊지 않습니다.”
“몇 년이나?”
"사십년.“
”그래, 그런데 남편이 술을 먹으면 기분 좋아하는가, 나빠하는가?“
”평소엔 말이 없는 사람인데,
술만 처먹으면 사람이 확 바뀌어서 음주가무의 선봉장이 됩니다.“
”그렇다면 남편은 술만 먹으면 행복한 거 아니냐?“
”그렇긴 한데 남편 간뗑이가 걱정도 되고 해서 제가 많이 속상합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술을 먹으면 남편은 행복한데 자매는 불행하고,
남편이 술을 안 마시면 남편은 불행하고 자매는 행복하단 말이 되는구먼.“
”꼭 그렇다기보단 남편이 술을 안 먹고 자기 건강관리나 했으면 합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술 먹고 행복해하는 걸 보면 속상하단 그 얘기 아닌가?“
”어째 주님은 그리 말귀를 못 알아들으십니까?
결혼을 안 해보고 돌아가셔서 주부들 마음을 그리도 모르시는군요. 속상합니다.“
”아니, 이년이 내가 혼자 살다 죽어서 총각귀신이 된 것도 억울한데
엇다 주둥이질이야, 주둥이질.
네가 내 속을 긁었으니 너도 한 번 당해 봐라.“하시고는
”너는 앞으로 남편 때문에 속상해할 때마다
라면 두 그릇이 먹고 싶은 마음이 들 거다.“하시는 바람에
나중에 그 자매가 감당 못할 비만녀가 되었다는 야그.
두 번째, 남의 문제를 떠안지 마라.
상담 받으러 오시는 분 중에 “저도 문제지만 제 남편도 문제입니다.
혹은 제 자식놈도 문제입니다.”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분들은 자기 병 고칠 생각은 안 하고,
남의 병 참견하는 오지랖 넓은 환자와 비슷합니다.
이런 분들께 “다른 사람 걱정 마시고, 자매님 걱정이나 하세요.”하면
“가족인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합니다.
그럴 때 속에서 “씨잘데기 없는 걱정 말고 너나 잘해, 너나.”하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참고
“자매님이 가족 걱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나요?
해결되지 않는다면 각자 문제는 각자가 해결하게 두고
자매님 문제나 걱정하세요.”하고 달래는데,
이런 때 말귀를 알아들으면 머리가 좋은 것인데,
“알겠는데요. 우리 남편 어떡하면 될까요?”하고 ‘
오초’도 지나지 않아서 또 묻는다면,
그건 사람 머리가 아니라 '어두' 물고기 머리인 것이고,
‘십초’ 후 물으면 '조두‘ 새대가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각자 알아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사람의 인생인데,
그래도 남의 십자가를 지고 싶다면 우선 자신이 건강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것도 지고, 남의 십자가도 지고 갈 수 있는데,
자기 것도 낑낑대면서 남의 십자가 무겁다고 걱정한다면
‘너나 잘해라, 등신아.’하는 소리 밖에 못 들을 것입니다.
세 번째,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의 포로’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아주 힘들어 하시는 분들을 보면,
대체로 자기만 가장 큰 문제가 생긴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에 나만큼 힘들게 사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그런데 그렇게 생각할수록 문제의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
해결책은 점점 더 안 보입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보다 더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러 나가야 합니다.
사람 마음 안에는 ‘비교 심리’란 것이 있어서
‘남들은 다 잘사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이야.’하면 극도의 불행감에 빠지지만,
‘나보다 못사는 사람도 많네’하면
‘그래도 나는 살 만하네’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문제가 생겼을 때는 같은 문제가 생긴 사람들을 만나라.
아파 본 사람이 남의 아픔을 안다고,
문제를 겪어본 사람만이 남의 문제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참견질하지 않고
잘 위로해 준다는 것입니다.
어떤 본당에 상담소가 하나 생겼습니다.
본당신부가 신자분들을 위해서
특별히 학위를 가진 상담가를 불러서 상담소를 차린 것입니다.
유명 대학을 나오고 경력이 화려한 상담가가 오자,
처음 며칠 동네 사람들이 구름 같이 몰려들어서
순서표를 받아야 상담을 할 수 있을 정도였는데,
며칠이 지나자 이상하게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전부 어디론가 가기에 본당신부가 따라가 보니
골목 안쪽의 ‘인생 구단’이란 별명을 가진 점쟁이 할머니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노발대발한 본당신부가 신자들을 야단치면서 왜 미신을 믿느냐고 하자,
“점집에 간 건 잘못인데, 그 할머니는 산전수전 다 겪은 분이라
찾아가면 그저 위로해주고 얘기를 잘 들어주는데,
상담소장은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게 공부 좀 했답시고 잔소리를 해대서
영 ‘재수 똥’인지라 안 가는 겁니다."
다섯 번째, 문제와 싸우려고 하지 말고, 문제가 주는 의미를 생각해보라.
약간 수준 높은 주문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무조건 적대시하고 싸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격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개성이 강하거나 완고한 사람일수록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호전적입니다.
그래서 잘 쓰는 말이 ‘병에 걸리면 투병’, ‘문제가 생기면 투쟁’,
‘끝장을 보자’라는 호전적인 말들을 사용하면서
‘문제’를 ‘자기를 괴롭히는 적’으로 인식하는데,
이렇게 살다 보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과정지향심리학 (Process-Oriental Psychology)에서는
‘문제’를 ‘적’이 아니라 ‘스승’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문제’가 내가 지금 자각할 필요가 있는 중요한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인생의 스승’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을 ‘수행형 생활방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고,
이런 사람들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건
자기 인생의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나름대로의 문제를 가지고 삽니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인생 전체가 문제에 묻혀 버릴 정도로
힘들게 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돌 틈에 숨구멍이 있듯이 아무리 힘겨운 인생살이에도 숨구멍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문제가 생겼을 때에 무서워서 피하거나,
문제의 원인을 자기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내 안에서 찾는 훈련을 통해서 내 삶을 건강하게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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