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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의 시 [나자렛 예수 외]

yyddgim 2011. 6. 13. 09:05

구상의 시 [나자렛 예수 외]

 

 

 

[나자렛 예수]

 

구상

 

 

나자렛 예수!

당신은 과연 어떤 분인가?

 

마굿간 구유에서 태어나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기구망측한 운명의 소유자,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상놈들과 창녀들과 부역자들과

원수로 여기는 딴 고장치들과

어울리며 먹고 마시기를 즐긴 당신,

 

가난한 사람들에게

굶주린 사람들에게

우는 사람들에게

의로운 일을 하다 미움을 사고

욕을 먹고 쫓기고

누명을 쓰는 사람들에게

`행복된 사람은 바로 당신들'이라고

`하느님 나라는 바로 당신들 차지'라고

엄청난 소리를 한 당신,

 

소경을 보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문둥이를 말짱히 낫게 하고

죽은 사람을 살려내고도

 

스스로의 말대로

온 세상의 미움을 사고

욕을 먹고, 쫓기다가

마침내 반역자란 누명을 쓰고

볼꼴 없이 죽어간 철저한 실패자,

 

내가 탯줄에서 떨어지자 맺어져

나의 삶의 바탕이 되고, 길이 되고

때로는 멀리하고 싶고 귀찮게 여겨지고,

때로는 좌절과 절망까지를 안겨주고

때로는 너무나 익숙하면서도

생판 낯설어 보이는 당신,

당신의 참모습은 과연 어떤 것인가?

 

□ *

 

당신은 사상가가 아니었다.

당신은 도덕가가 아니었다.

당신은 현세의 경륜가가 아니었다.

아니 당신은 종교의 창시자도 아니었다.

 

그래서 당신은 어떤 지식을 가르치치 않았다.

당신은 어떤 규범을 가르치치 않았다.

당신은 어떤 사회 혁신운동을 일으키지 않았다.

또한 당신은 어떤 해탈을 가르치치도 않았다.

한편 당신은 어느 누구의

과거 공적이 있고 없고를 따지지 않았고

당신은 어느 누구의

과거 죄악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았고

당신은 실로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생각이나 말을 뒤엎고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고

고통받는 인류의 해방을 선포하고

 

다만, 하느님이 우리 아버지시요,

그지없는 사랑 그 자체이시니

우리는 어린애처럼 그 품에 들어서

우리도 아버지가 하시듯 서로를 용서하며

우리도 아버지가 하시듯 다함없이 사랑할 때

 

우리의 삶에 영원한 행복이 깃들고

그것이 곧 `하느님의 나라'라고 가르치고

그 사랑의 진실을 목숨 바쳐 실천하고

그 사랑의 불멸을 부활로써 증거하였다.

 

<드레퓌스의 벤취에서, 고려원, 1984>

 

 

 

[봄맞이 춤]

 

구상

 

옛 등걸 매화가

흰 고깔을 쓰고

학(鶴)춤을 추고 있다.

 

밋밋한 소나무도

양팔에 푸른 파라솔을 들고

월츠를 춘다.

 

수양버들 가지는 자잔가락

앙상한 아카시아도

빈 어깨를 절쑥대고

대숲은 팔굽과 다리를 서로 스치며

스탭을 밟는다.

 

길 언저리 소복한 양지마다

잡초 어린것들도 벌써 나와

하늘거리고

 

땅 밑 창구멍으로 내다만 보던

씨랑 뿌리랑 벌레랑 개구리도

봄의 단장을 하느라고

무대(舞臺) 뒤 분장실(扮裝室) 같다.

 

바람 속의 봄도

이제는 맨살로 살랑댄다.

 

<구상문학선, 1975>

 

 

 

[오늘서부터 영원을]

 

구상

  

오늘도 친구의 부음(訃音)을 받았다.

모두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차피 가는구나.

 

나도 머지않지 싶다.

 

그런데 죽음이 이리 불안한 것은

그 죽기까지의 고통이 무서워설까?

하다면 안락사(安樂死)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래도 두려운 것은

죽은 뒤가 문제로다.

저 세상 길흉이 문제로다.

 

이렇듯 내세를 떠올리면

오늘의 나의 삶은

너무나 잘못되어 있다.

 

내세를 진정 걱정한다면

오늘서부터 내세를,

아니 영원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유치찬란, 삼성출판사, 1990>

 

 

 

[임종예습(臨終豫習)]

 

구상

  

흰 홑이불에 덮여

앰불런스에 실려간다.

 

밤하늘이 거꾸로 발밑에 드리우며

죽음의 아슬한 수렁을 짓는다.

 

이채로 굳어 뻗어진 내 송장과

사그라져 앙상한 내 해골이 떠오른다.

 

돌이켜보아야 착오(錯誤)투성이 한평생

영원한 동산에다 꽃 피울 사랑 커녕

땀과 눈물의 새싹도 못 지녔다.

 

이제 허둥댔자 부질없는 노릇이지…

 

―아버지 저의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시늉만 했지 옳게 섬기지는 못한

그분의 최후 말씀을 부지중(不知中) 외우면서

나는 모든 상념(想念)에서 벗어난다.

 

또 숨이 차온다.

 

<까마귀, 홍익사, 1981>

 

 

 

[한가위]

 

구상

  

 

어머니

마지막 하직할 때

당신의 연세보다도

이제 불초 제가 나이를 더 먹고

아버지 돌아가실 무렵보다도

머리와 수염이 더 세었답니다.

 

어머니

신부(神父)형*이 공산당에게 납치된 뒤는

대녀(代女)* 요안나 집에 의탁하고 계시다

세상을 떠나셨다는데

관(棺)에나 모셨는지, 무덤이나 지었는지

산소도 헤아릴 길 없으매

더더욱 애절탑니다.

 

어머니

오늘은 중추 한가위,

성묘를 간다고 백 만 시민이

서울을 비우고 떠났다는데

일본서 중공서 성묘단이 왔다는데

저는 아침에 연미사(煉彌撒)*만을 드리곤

이렇듯 서재 창가에 멍하니 앉아서

북으로 흘러가는 구름만 쳐다봅니다.

 

어머니

어머니

 

* 신부(神父)형: 나의 친형 구대준(具大浚)은 가톨릭 신부였음.

** 대녀(代女): 카톨릭의 세례 때 공증인이 된 사람을 대부(代父)·대모(代母)라 하고 그 당자를 대자(代子)·대녀(代女)라고 함.

*** 연미사(煉彌撒): 가톨릭의 제사를 미사(彌撒)라 하고, 죽은 이를 위한 제례를 연(煉)미사라고 함.

 

<유치찬란, 삼성출판사, 1990>

 

 

 

 

[말씀의 실상(實相)]

 

구상

  

 

영혼의 눈에 끼었던

무명(無明)의 백태가 벗어지며

나를 에워싼 만유일체(萬有一切)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노상 무심히 보아오던

손가락이 열 개인 것도

이적(異蹟)에나 접하듯

새삼 놀라웁고

 

창밖 울타리 한구석

새로 피는 개나리꽃도

부활(復活)의 시범(示範)을 보듯

사뭇 황홀합니다.

 

창창(蒼蒼)한 우주(宇宙), 허막(虛莫)의 바다에

모래알보다도 작은 내가

말씀의 신령한 그 은혜로

이렇게 오물거리고 있음을

상상도 아니요, 상징(象徵)도 아닌

실상(實相)으로 깨닫습니다.

 

<말씀실상(實相),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