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물리학이 밝혀낸 놀라운 사실들
과거 300여 년 동안 서구문명과 서양 의학은 그 위대성을 인류의 마음 깊숙이 새겨놓았다. 산업혁명에서 시작되어 현재 진행 중인 정보통신 혁명으로 이어지고 있는 서구문명은 대자연의 위력 앞에 무력하게만 느끼던 인류에게 크나큰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또한 서양의학은 의료기법의 비약적 발전과 무수한 의약품의 개발을 통해 수많은 인명를 구하는 등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서구문명과 서양의학의 눈부신 발전은 동양적 가치관과 동양사상, 동양의학을 경시하는 풍조를 낳았고, 이 때문에 사람들은 우리의 전통사상과 가치를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것 혹은 미신으로 치부하고 무시해 왔다. 옛부터 전해지던 동양 현자들의 가르침과 구도자들의 체험도 재현성과 객관성을 요구하는 현대의 과학적 방법론 하에서는 아무런 인정도 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20세기 초부터 현대물리학은 서구문명을 주도해 온 뉴턴의 기계론적 세계관과 데카르트의 이분법적 사고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뉴턴과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사고로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부분들이 질서정연하게 합쳐져서 전체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부분부분에 대한 이해는 바로 전체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고 그 결과 인류는 머지않은 장래에 우주 전체를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낳았다.
하지만 무한한 우주를 논하는 상대성 이론과 극히 미세한 세계를 파헤치는 양자역학, 그리고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홀로그램 우주론은 논리와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기계론적이고 결정론적인 사고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부터는 물질의 근본을 다루는 물리학이 20세기에 들어와 무엇을 발견했는지 그리고 그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핵심을 살펴보면 다음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물질이란 에너지의 한 형태이고 그 변환은 E=mc2(E는 에너지, m은 질량, c는 빛의 속도)으로 간추려진다.
둘째, 시간이란 관찰자가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모든 관찰자에게 공통되는 절대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셋째, 물체를 담고 있는 공간은 각각 다른 곡률에 의해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유클리드적 동질의 공간, 즉 절대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전물리학에서는 공간은 3차원이고 시간은 별개의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상대성 이론에서는 이를 부정한다.
공간과 시간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4차원 시공간 연속체를 형성하므로 시간에 관해 언급하지 않고서는 공간을 이야기할 수 없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만일 관찰자들이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면서 동일한 사건을 본다고 치자.
이 경우 그들은 그 사건이 일어난 시간을 서로 다르게 인식할 것이다.
이는 시간과 공간을 포함하는 모든 측정은 그 것이 갖는 절대적 의미를 상실하고, 주관과 객관, 주체와 객체를 분리시키는 것도 불가능해지며, 눈에 보이는 물질과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상호 변환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양자역학은 원자, 소립자 등 극히 미세한 세계를 다루는 물리학 분야인데 양자역학을 통해 발견된 중요한 사실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원자는 그 중심에 원자의 질량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원자핵이 있고, 그 주위를 극도로 미세한 입자인 전자들이 빠르게 돌고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원자핵의 크기는 원자의 10만분의 1에 불과하다. 이를 쉽게 설명하자면 원자는 축구장 크기만한 텅 빈 공간 한가운데 야구공 하나가 놓여 있는 모습으로 비유될 수 있다.
둘째, 전자들은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는데 일정한 속도로서 궤도를 따라 도는 것이 아니고 정해진 법칙 없이 여기서 툭, 저기서 툭 하고 나타난다. 이를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라고 한다.
셋째, 전자 또는 아원자가 입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유일한 경우는 우리가 그것을 보고 있을 때이다. 즉 전자는 관찰하는 사람이 있는 경우에는 나타나고 없는 경우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넷째, 전자 등의 아원자는 빛과 마찬가지로 입자인 동시에 파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입자란 아주 작은 지역에 국한된 실체이고, 파장은 넓은 공간에 퍼져 있는 파동이다.
따라서 하나의 존재는 이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지닐 수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의 상식이다.
하지만 빛의 경우 파장의 특징인 '간섭현상'과 입자의 특징인 '광전효과(光電效果)'를 동시에 나타내는데, 이는 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때 간섭현상이란 둘 이상의 파동이 교차하면서 간섭무늬를 만드는 현상을 말하고, 광전효과란 자외선을 표면에 쏠 때 그 표면에서 전자가 튀어나오는 물리학적 효과를 이야기한다.
양자역학에서 이루어진 이러한 발견들은 우리의 합리성과 상식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물질을 형성하는 원자의 99.999%가 텅 빈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딱딱해 보이는 물질이라 할지라도 텅 빈 공간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아파트를 비롯해 자동차, 소파, 책상, 심지어는 내 몸까지도 실제로는 거의 100% 텅 빈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전자를 포함한 소립자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체로서는 파악될 수 없음을 의미하는데, 그렇다면 소립자들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또 일반적으로 크기가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렇다면 크기가 없는 전자를 과연 존재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어떤 물체든 입자로서의 성질과 파장으로서의 성질을 동시에 지닐 수는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 두 가지 특징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빛이나 전자는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전자는 관찰될 때만 입자로서 존재하는데, 이는 무엇을 말해 주고 있을까?
과학자들은 물질을 더 깊이 뚫고 들어갈수록 어떤 독립된 구성체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체의 여러 부분들 사이에 있는 복잡한 그물 관계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이러한 관계들은 언제나 본질적인 면에서 관찰자를 포함하고 있으며, 인간이라는 관찰자는 관찰되는 과정들의 연쇄고리에서 마지막 연결을 이룬다. 따라서 프리초프 카프라는 《생명의 그물》(The Web of Life)에서 어떤 대상물의 성질도 관찰자와 대상의 상호작용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를 달리 말하면 물질은 오직 마음과 결부될 때만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립자의 세계는 관찰자의 주관이 배제된 객관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주관과 객관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이 있고 없고는 주관적으로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일 뿐 '실제로 무엇이 있다 혹은 없다'를 객관적으로 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어떤 동일한 존재나 사건도 마음의 작용으로 각각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죽음을 경험했다가 다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서양 사람들은 주로 죽은 후 '터널을 빠져나갔다'고 이야기하는 반면 동양 사람들은 '배를 저어 강을 건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육체의 죽음' 이라는 똑같은 사건도 그것을 체험하는 사람의 지식이나 편견 즉 마음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인식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뿐만 아니라 주어진 공간과 시간상의 특정 위치를 규정할 수 없다는 양자의 '비국소성(nonlocality)'은 각 부분부분이 독립적이지 않고 전체가 상호 관련을 맺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분리되고 독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물체라도 실제로는 시공간의 제한을 초월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물리학자 맨스필드(Victor Mansfield)는 이러한 측면에서 '세상은 전체가 상호 관련을 맺고 있으며 모든 것은 철저히 종속적이다'라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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