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시

<우리보다 먼저 당신은>-이현주

yyddgim 2011. 6. 14. 20:59

 

[우리보다 먼저 당신은]

 

 

산에서 혹은 거친 들에서 당신은 우리보다 먼저 나그네되어

우리가 길을 떠났을 때 말없이 동행해 주었습니다.

 

 

간음한 여인 앞에서 당신은 우리보다 먼저 침묵이 되어

우리가 말을 잃었을 때 긴 휘파람을 불어주었습니다.

해골산 꼭대기에서 당신은 우리보다 먼저 절망이 되어

우리가 꿈을 잃고 무너졌을 때 넉넉하게 받아 안아 주었습니다.

 

 

잠시 빌린 부자의 무덤에서 당신은 우리보다 먼저 죽음이 되어

우리가 마지막 숨을 거두었을 때 두 눈을 고이 감겨주었습니다.

 

 

그날 새벽 눈부신 동산에서 당신은 마침내 우리보다 먼저 일어나

우리가 아직 어둠 속에 누워 있을 때 잠든 태양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이현주 , 뿌리가 나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