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제자가 되려면 - 신교선 신부님
예수님 제자가 되려면 - 신교선 신부님
2010년 9월 5일 연중 제23주일 | 루카 14, 25-33
그때에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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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 33).
성 니콜라오 데 플뤼에는 스위스 주보성인입니다. 그는 1417년 알프스 산자락에서 태어났습니다. 군 장교요 대지주이며 지역 유지로서 부인 도로테아와 함께 5남 5녀의 자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게 정말 주님의 부르심일까?’ 그는 망설이며 자신 없어합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확인하고자 2년여 동안 매일 저녁 부인과 함께 기도드리며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부르심을 식별하기란 그렇게도 어려웠습니다. 주님의 뜻을 확인하기란 그리도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니콜라오는 결단을 내립니다. 재산과 명예는 물론 사랑하는 가정까지도 떠나 일생 동안 은수자 생활을 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독일․프랑스 국경에 위치한 알자스 지방으로 갔지만 몇 개월 뒤 고향으로 되돌아와 고향에서 은수자 생활을 하기로 결단을 내립니다. 생가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깊은 계곡 플뤼얼리 란프트(Flueli Ranft)에서 물소리와 새소리를 들어가며 혼자서 20년을 살다 그곳에서 주님 품에 안깁니다.
그는 수많은 방문객을 맞이하여 조언, 상담을 해주고, 기도와 희생을 통해 수많은 이들의 갈등과 충돌을 해결해 줍니다. 가정 문제, 마을 간의 문제, 국가 간의 충돌이나 갈등 등 수많은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는 생전에 이미 유럽 곳곳에 알려져 끊임없이 방문객을 맞이하여 주님 뜻을 알려 줍니다. 오늘날 스위스 사람들은 그를 ‘조국의 아버지’(Vater des Vaterlandes) 또는 ‘평화를 이룩한 분’(Friedensstifter)이라고 부릅니다.
잠시 그가 체험한 ‘우물 환시’(Brunnenvision)를 통해서 그의 영성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그는 자신이 겪는 기쁨에 대해서 뿐 아니라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서까지도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나서 깊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났을 때 다음과 같은 모습을 체험했습니다. 그의 앞에 두 갈래의 길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한쪽 길은 아주 넓고 컸습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바삐 힘겹게 일하는 데 비해 그들은 하나같이 너무도 가난하고 헐벗은 모습이었습니다.
그 오른쪽으로 아주 좁고 작은 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곳 한가운데 성체를 모셔두는 감실 같은 집이 예쁘게 꾸며진 채 모셔져 있었습니다. 엄청나게 큰 감실 문은 활짝 열려져 있었습니다.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안으로 들어가 보라’는 내면의 음성을 듣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부엌이 보였는데 그 부엌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부엌 오른쪽으로 4층 높이의 사다리 하나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 명만이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옷은 휘황찬란하고 천사들을 보듯 아름답기 그지없었습니다. 그 위쪽에 있는 엄청나게 큰 통으로부터 포도주와 올리브기름과 꿀이 부엌을 향해 풍요롭게 흘러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이 힘든 일에 지쳐 있으면서도 누구에게나 속해 있는 이 우물을 이용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수많은 이가 예수님을 뒤따르고자, 그분의 제자가 되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분을 뒤따르는 길은 그분이 가신 길을,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는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길은 예루살렘으로 향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가기에 앞서 우리는 예수님처럼 골고타를 지나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스승 예수님께서 골고타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가셨기 때문입니다. 골고타는 십자가의 언덕이며 고통과 죽음의 언덕입니다. 골고타로 가기에 앞서 예수님은 그분을 뒤따르는 이들, 제자가 되려는 이들에게 한 가지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 27).
우리가 성 니콜라오처럼 그렇게 자기 소유뿐 아니라 5남 5녀를 둔 아빠로서 사랑하는 아내와 가정까지 떠나 은수자 생활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수많은 인간의 영혼과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떠난 그분의 영성은 본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한 예로, ‘4대강 살리기’ 개발 문제에 직면하여 문제의식은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치 ‘아리랑 노래 가락’처럼 그렇게도 아름답게 굽이굽이 흐르는 우리 한국의 강들을 자로 자르듯 쇠와 시멘트를 강물 속에 쏟아 부어 가며 강을 막아 버리는 현장에 가서 죽어가는 생명체들을 구하려는 노력은 누구나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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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교선 _ 신부, 인천교구 김포 본당 주임
월간「참 소중한 당신」 2010년 9월호 <송이꿀보다 단 말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