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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과 성경 읽기

yyddgim 2012. 2. 8. 22:41

우리는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나고 난 후

‘저 사람 성격 많이 바뀌었네.’하는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혹은 자기 성격이 마음에 안 드는 경우

성격을 바꿔 보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격이 좋네 안 좋네', '성격을 아네 모르네' 하지만,

정작 성격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바로 대답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성격을 잘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격이란 무엇인가?

한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고유한 특성을 '성격'이라고 합니다.

즉, 자아를 이루는 근간이 성격인 것입니다.

이 성격에 대한 잘못된 생각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격을 '좋다 나쁘다'로 말하는 것인데,

사람의 성격은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평가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성격은 얼마나 건강한가 혹은 병들었는가,

즉 성장 여부로 보아야지 윤리적 관점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사람 성격의 건강성은 어디에서 결정되는가?

심리학자인 '칼 융'은 말하길 나무가 잘 자라려면 그 뿌리가 내린 토양이 비옥해야 하듯이,

성격은 타고나지만 어떤 환경에서 성장하는가에 따라 그 양상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즉, 어떤 부모에게 양육되고 어떤 정서 속에서 성장하였는지에 따라

현재의 ‘나’가 달라지고, ‘나’를 인식하는 태도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격을 좋다 나쁘다로 평가하는 것은

자칫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부분을 적대시하고, 메말라 죽게 할 위험이 큰 생각입니다.

 

성격에 대한 두 번째 오해는 성격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가끔 성격개조 프로그램이니 하는 것들을 받고 나서 자기 성격이 바뀌었다고 하거나,

자기는 이제 완전히 성격이 바뀌었으니 자기를 새 사람으로 봐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약간 사기꾼 기질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처럼 사람의 성격은 바뀌지 않습니다.

만약 바뀌었다고 한다면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나왔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격이 달라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바뀐 것이 아니라, 성장했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장미가 백합이 될 수는 없지만,

시들시들하던 장미꽃이 예쁘고 활짝 핀 장미가 될 수는 있는 것처럼

사람도 그렇습니다.

이씨가 김씨가 될 수는 없지만,

병든 이씨가 건강한 이씨로 될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성격을 발달시키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알아내는 일일 것입니다.

사람의 성격이 발달하고 성장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말씀 한 마디'입니다.

운동선수의 예를 들어서, 아무리 열심히 연습을 해도 슬럼프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때

고수가 해 주는 말 한 마디가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을 일컬어 ‘One Point Lesson'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우리 인생 역시 인생의 달인들이 던져 주는 말 한 마디가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말씀 한 마디를 늘 기억하고 사는 것이 큰 도움이 되는데,

이렇게 도움을 주는 말씀 중에 최고의 것이 ’성경 말씀‘이라고 합니다.

 

교정사목하는 분들이 요청하시는 책 중에 가장 많은 것이 성경인 이유는,

감옥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힘겨운 시간을 보낼 때 가장 힘이 되는 것이

’성경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수감자들이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써 놓고 들여다보면서

하루하루를 지낸다고 합니다.

골프선수 최경주도 경기를 치르는 동안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말씀을 되새기면서 시합한다고 하고,

예수님 당대에 평신도 율법학자인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아예 성경 구절을 써서 성구갑에 넣어 목에 걸고 다니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성경을 읽으면 마음이 변화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흔히 ‘말씀의 힘’이란 말을 할 때가 있는데

말씀에는 에너지가 있어서입니다.

 

가끔 화장실, 병실, 식당에서 벽에 붙어 있는 성경 구절들을 볼 때가 있는데,

잠깐 보았는데도 왠지 기분이 좋아지고 한 번 더 자세히 읽게 됩니다.

성경 말씀이 가진 에너지가 전해진 것이지요.

 

실제로 기 측정을 하는 사람들이 측정한 결과,

달마 도사 그림보다 성경에서 나오는 기가 네 배나 강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말씀의 힘이 이렇게 강하기에

다른 무엇보다도 성경묵상을 하는 것이

에너지가 고갈된 마음을 채우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화투를 너무너무 좋아하는데 치는 족족 돈을 잃는 본당신부가

어떻게 하면 돈을 딸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신심 깊은 본당수녀가 조언하기를

“'고'를 하실 때마다 ‘예수, 마리아, 요셉’하고 ‘고’를 부르시면 돈을 따실 것입니다.”

그 말을 믿고 본당신부는 '예수, 마리아, 요셉' 성가정상 앞에서 기도하기를

“제가 딴 돈의 십분의 일을 늘 내어놓겠습니다.”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정말 '예수, 마리아, 요셉'을 외치면서 화투를 쳤더니

뒷장이 너무나 잘 붙어서 치는 족족 돈을 따게 되었고,

그래서 만원을 따면 천원씩 성가정상 앞에 갖다놓았는데,

나중에는 돈이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십만원을 따도 천원,

이십만원을 따도 천원만 내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무리 기도를 해도 뒷장이 붙지 않아

다시 돈을 잃게 된 본당신부가 '예수, 마리아, 요셉' 세분께

고리는 뜯어 가면서 왜 뒷장을 안 붙여 주는 거야 하고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십자가에 매달려 계시던 주님이

“야, 이 도둑놈아. 왜 십분의 일을 정확히 안 바쳤냐?” 버럭 호통을 치시더니

십자가 위의 명패와 당신이 쓰고 있던 가시관을 본당신부에게 마구 던지시는 것입니다.

겁이 난 본당신부가 성모님께 도망가서 도와 달라고 청하자,

성모님께서 “천원짜리는 거지 동냥을 주어도 자기들이 거지인 줄 아냐며 안 받는다.” 하시며

밥주걱으로 본당신부 주둥이를 마구 구타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요셉성인에게 도망가자, 천하의 공처가로 소문이 자자하신 요셉성인께서는

“야, 야, 오지 마라. 너 때문에 나까지 맞을라.”하시면서 도망가셨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

말씀은 좋은 곳에 써야지 좋지 않은 곳에 사용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성경묵상을 하시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상당히 부담을 느끼십니다.

어떤 본당에서 성경묵상운동이 시작되었는데

갑자기 고해성사를 보는 분들이 늘었습니다.

한결같이 ‘독성죄’를 지었다고 고백.

도대체 왜 그러시냐고 고해신부가 묻자,

한 분은 성경책에 모르고 밑줄을 긋는 대죄를 지었다고 하고,

다른 한 분은 성경을 처음부터 묵상하려고 하는데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가고 불경스런 생각만 든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보시는 데요?” 묻자

마태복음 첫 장 족보를 보고 있는데, 도무지 조상들 이름이 헷갈려서

육 개월째 그것만 보다 보니 지겹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고,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죄스러워서 고해성사를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여러 가지 음식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이 하느님이 주신 가르침이긴 하지만,

때로 나한테 맞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있는가하면,

또 어떤 부분은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성경묵상을 하실 때에는

무작정 음식을 입에다 쑤셔넣는 식으로 하셔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성경 자체를 멀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경 말씀은 맛있는 음식을 골라먹듯이

내 마음에 드는 구절을 골라서 천천히 음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충분히 음미하고 말씀을 섭취해야

그 말씀이 내가 역경에 처했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는

'one Point Lesson'을 해 줄 것입니다.

 

말씀이신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념하는 오늘,

성경 말씀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 하나를 선택하셔서

내 마음이 힘들 때마다 묵상하시고 거듭나시는 부활의 삶 사시길 바랍니다.